회의든 면접에서든 사람들이 뻔한 대답을 주고받는 경우가 지극히 많다. 회의에서는 "최선을 다해 달라"는 주문을 일상적으로 하고, "적절하게 조치하겠다"는 더 일상적이고 뻔한 대답이 으레 뒤따른다. 면접에서는 더 심하다. "상사에게서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는다면" 혹은 "본인이 희망하지 않은 부서로 발령이 난다면" 등과 같은 질문이 여기에 해당하고 이에 따르는 대답 역시 불 보듯 뻔하다. 요즘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이른바 `답정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뻔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면 어떤 안 좋은 결과가 일어날까. 지극히 상식적인 것은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여기에는 더 큰 부작용이 있다. 바로 질문자와 응답자가 서로 동상이몽을 할 가능성과 그 크기가 커진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회의든 면접이든 질문자와 응답자 간에 느끼는 부정적 혹은 긍정적 느낌의 차이가 크게 벌어져 서로 갈등하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뻔한 질문을 한 쪽에서는 그 대답이 뻔할수록 식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특이한 대답을 하면 상당히 비상식적이거나 매우 이상한 것처럼 느낄 가능성이 커진다. 즉 뻔한 질문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대답이 어떤 방향으로 가든 간에 질문자는 만족스럽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뻔한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쪽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진다는 점이다. 뻔한 질문에 뻔한 대답을 한 쪽에서는 자신의 대답에서 실수를 조금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즉 아무리 박하게 평가하게 되더라도 자신은 평균 이상으로 대답한 것이 된다. 게다가 약간만 특이한 대답을 하게 되면 자신이 매우 독창적인 대답을 했다고 자평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면접 장면에서는 더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목격하게 된다. 뻔한 질문을 한 면접관은 지원자의 대답이 어떻든 만족감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즉 뽑을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원자 입장에서 보면 매우 다른 결과가 나온다. 자신이 실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떨어질 근거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차적으로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기업 면접에서 낙방한 지원자들은 자신이 떨어진 이유를 찾지 못하니 그 이유를 어디에다 돌리겠는가. 자신이 지원한 기업의 무언가 비정상적인 선발 과정에 이유를 돌리며 비난할 것이고 더 나아가 잠재적인 적이 되기 십상이다.

회의도 마찬가지다. 뻔한 질문을 한 사람 쪽에서는 (대답을 주로 하는) 다른 참석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간에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회의실을 나올 수밖에 없으며 그 다른 사람들은 이유 없이 자신들에게 불만을 지니는 질문자(즉 회의의 리더)에 대해 섭섭해하거나 원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라고 묻는다. 그런데 유대인 부모들은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오늘은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뻔한 질문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좋은 질문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가 정해져 있는 뻔한 대답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좋지 못한 질문은 반드시 느낌의 격차를 벌려 갈등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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