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한 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제목은 `그 피곤에 찌들고, 가난하고, 메이플라워호에서 갓 내린 사람의 옷 같은 드레스를 제게 주세요`였다.

메이플라워호에서 내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1620년 이 화려할 것 없는 화물선은 영국에서 핍박받던 청교도인 102명을 태우고 넉 달 동안 힘겨운 항해를 거듭하다 매사추세츠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한 겨울은 춥고 혹독했으며, 당시 절반은 추위와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이들이 입던 드레스는 아름답고 우아한 귀부인들의 옷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 부스스한 원단에 칙칙한 색으로 날염된 투박한 드레스들이 청교도들의 차림이었다. 하필이면 그런 드레스가 왜 뉴욕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걸까.

이 유행은 비단 뉴욕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비슷한 유행이 한창이다. 여성들은 소박하고 칙칙한 블라우스에 앞치마처럼 보이는 원피스를 덧입고 다닌다. 마치 가난한 시골집에서 흙을 묻히고 자란 여자처럼 스스로를 꾸미는 것이다. 이 가난한 드레스는 심지어 이름 있는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쳐 5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밀레니얼 세대, 혹은 Z세대들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이제 럭셔리하고 반짝이는 것보다는 가난하고 진실한 것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 가난한 옷이 더 진짜 같은 마음, 불우함, 빈곤함, 피곤함이란 일상에서 도망가지 않은 옷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이들은 쉽게 빨려든다.

우리는 세상의 절반이 빈곤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들만 노래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인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들에게 가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점점 깊어가는 골이기도 하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믿고 살아온 우리 세대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현재 시대는 점점 빈익빈 부익부를 향해 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는 지금, 갑자기 부자가 된 젊은 IT 기업인들과 자본가들의 그늘 뒤에는 세상의 빠른 발전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내리막길로 들어선 평범한 사람들의 암울한 미래가 그려지고 있다. 마치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19세기 초, 면화의 폭발적 생산과 섬유기술의 발달이 사회 지형을 바꾸고 있을 때와 같은 모습이다. 당시에도 무역과 섬유에 종사하던 누군가는 거부가 되었지만 공장에서 직물을 짜던 대다수 공인은 직기의 발전으로 실업 위기에 직면했었다.

이런 시기에는 패션의 공식이 다르게 작용한다. 당시 남성 패션은 젠틀하고 말쑥한 것보다는 퇴폐적이고 추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프랑스의 시인 샤토브리앙의 묘사에 따르면 당시 멋쟁이 남성이란 아래와 같아야 했다.

"언뜻 보기에도 그는 병자처럼 보여야 했다. 자신의 용모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듯한 분위기를 연출해야 했다. 수염은…(중략)…마치 절망의 순간에 갑자기 자라버린 것처럼 보였다. 바람에 흩날려 부스스해 보이는 머리, 무언가를 뚫어지게 쏘아보는 시선…(중략)…흐릿한 눈빛, 인류에 대한 경멸로 일그러진 입술, 존재에 대한 혐오와 불가사의에서 헤어나지 못해 지친 듯한 바이런풍의 마음."

패션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했다. 한편으론 사회의 약자인 젊은이들이 바라본 시대적 절망감이 안쓰럽고, 다른 한편으론 이런 패션을 과감하게 선택하는 젊은 위트가 부럽다. 지금의 21세기는 19세기와는 다를 것인가. 만약 우리 역사가 헛바퀴를 굴러온 것이 아니라면, 4차 산업혁명은 보다 많은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배려 속에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소희 `김소희트렌드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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