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추석 명절 연휴는 열흘이다. 어떤 사람들은 열흘을 알차게 보낼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극심한 스트레스 생각으로 머리가 아프다. 명절에 가족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모여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서로에게 입힌 상처들을 다시 들쑤시는 행위는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대표적인 가족 명절로서 영화 소재로도 많이 쓰이는 갈등 요인이다.

한국의 명절에는 미국의 가족 명절이 가지고 있는 갈등 요인에 더해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 촉발 요인이 있다. "의례에 참가하는 가족"과 "수발을 드는 가족"이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 명절은 신나는 날이었지만 중학교부터는 큰집인 우리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 부엌에서 살았다. 나는 "의례에 참가하는 가족"이기도 하면서 "수발을 드는 가족"이었기 때문에 38선처럼 나뉜 두 가족 진영을 오갔다. 명절의 부엌은 "이제 이 집 사람이 되었으니 죽어도 이 집 귀신"이라는 사람들로 며칠 전부터 분주하다. 이들은 명절 준비와 뒤처리까지 꼬박 며칠을 공들이지만 막상 명절 의례에는 함께하지 않는다. 이들이 준비해 내간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차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는 가족은 따로 있다. 의례에 참가하는 가족은 "피를 나눈 가족"이다.

인류학에서는 의례와 상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의례의 중요한 기능은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는 일이다. 함께 먹고 마시면서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조금은 각별해진다. 명절을 쇠는 방법을 같이 나눈다는 것이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주는 만큼 동시에 그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 서툰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기능도 한다. 그런데 의례와 상징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이유는 인간의 공동체가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우리`는 유별나다. 동물들은 대개 혈연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룬다. 침팬지의 경우 수컷들은 태어난 무리에 머물고 성장한 암컷은 태어난 무리를 떠난다. 그래서 침팬지 무리는 서로 피를 나눈 수컷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를 나눈 암컷이 떠나기 때문에 근친 교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집단이 필요한, 극단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막상 집단은 혈연을 넘어서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과도 이룬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우리"라는 의식을 유지하도록 문화 행위를 함께한다. 혈연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면 굳이 의례와 상징을 통해서 공동체 의식을 계속 강화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의례와 상징 행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3만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 후기 구석기 시대 이전까지 고고학 유물은 기능적인 분류로 족했다. 손도끼, 찍개, 긁개 등 이름만 들으면 대략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는 같은 기능, 같은 형태를 띠고 있지만 양식적인 특징이 가미된 석기가 등장한다. 오리나시안, 그라베티안 등의 문화 명칭은 이름만으로 생김새를 가늠할 수 없다. 나고 자라면서 함께하지 않은 사람들과 "우리"가 되려면 몸과 얼굴 생김새에서 오는 비슷함이 아닌, 몸 밖의 문화적인 표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인간의 의례는 피를 넘어서는 사람들과 이루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만 지내는 명절이라면 굳이 추석을 쇨 필요가 없다. 21세기의 "우리"는 통신 수단과 SNS의 발달로 더더욱 혈연과 지연을 초월한다. 코드가 맞지 않으면 억지로 어울리지 않는다. 페친(페이스북 친구)을 끊고 차단을 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어도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이런 흐름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살아남으려면 "피붙이"라는 생각을 진즉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서로 코드를 맞추고 다양함을 보듬고 의례 행위를 나누어야 한다. "의례에 참가하는 가족"과 "수발을 드는 가족"을 계속 구분한다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명절은 없어질 것이다. 아니, 그런 명절이라면 없어져야 마땅하다.

[이상희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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