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를 구성하는 실체는 교육 종교 문화 제도 등 다양하다. 이 중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없지만 정치적 손익계산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은 많다. 그중 하나가 스포츠다. 물론 스포츠가 우리 사회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을 통해 평화 올림픽을 제안했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북한 선수단 참가에 대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부 세력의 `딴지걸기`도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스포츠를 통한 남북화해는 환상에 불과하고, 스포츠가 정치를 넘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남북한 대화를 위해 평창올림픽을 활용하려는 노력을 중지하라고 요구한다. 과연 그럴까. 이 같은 주장에 불온한 정치적 동기는 없을까.

잠깐 시계를 돌려 2800여 년 전, 고대 올림픽이 열리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리스 남서쪽에 위치한 올림피아 계곡에서는 제우스신을 기리는 제전경기가 열렸다. 도시국가 형태인 폴리스들은 올림피아, 피티아, 이스트미아, 네미아 등 개최 시기가 다양한 여러 행사를 개최했다. 이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컸던 것이 올림피아대회였다. 놀랍게도 요즘의 스포츠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수를 매수하기 위해 뇌물을 주다 걸려 벌금을 내는 사람도 있었고, 복싱 경기에서는 요즘의 UFC(이종격투기)처럼 쓰러진 상대편에게 파운딩을 퍼부을 수도 있었다. 레슬링과 복싱을 합친 판크라티온 경기에서는 눈 찌르기와 깨물기는 엄격히 제한됐다.

영국 BBC 방송국에 따르면 알려진 것과 달리 결혼하지 않은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경기장 입장이 허용됐고 제우스의 부인 헤라를 기리는 여성만의 축제도 벌어졌다. 당시 이들 도시국가는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는데 흥미롭게도 올림픽이 열리기 한 달 전에는 `신성한 휴전`을 맺었다. 출전 선수와 올림픽 관광객들이 안전하게 올림피아에 모여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조치였다. 고대 올림픽에서도 정치인의 연설은 단골 메뉴였지만 올림픽과 평화는 결코 낯선 조합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오늘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지난 6월 무주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석한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스포츠로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것은 "천진난만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스포츠를 통해 정치의 `물꼬`를 튼다는 생각은 어리석다고도 했다.

과연 스포츠는 정치 앞에 무력하기만 하며, 이는 북한 최고위층의 최종적인 의사일까. 국제 무대에서 북한은 `예측이 어렵고, 말이 통하지 않는 캐릭터`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노련한 배우의 전략일 것이다. 이를 통해 국제 무대 출연을 보장받고 때로는 출연료까지 챙기기 때문이다. 장웅 위원의 일갈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극적인 변화는 언제든 가능하다. 노동신문의 `베를린 구상`에 대한 비판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평가다. 30년 전에 열린 서울올림픽은 이념을 넘어 동서가 참가했지만 북한은 불참했다. 또다시 북한이 참가하지 못한다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세계만방에 무능력을 선포하는 셈이다. 스포츠는 평화를 위한 마중물도 될 수 있고, 평화의 결과물도 될 수 있다. 또 언제든지 상대와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카드다.

실생활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비즈니스맨은 종종 설득에 앞서 스포츠를 화제로 기회의 문을 열어젖힌다. 막대한 돈을 들여 연출하는 평창이라는 무대를 단 17일간의 축제로만 끝내버릴 이유는 없다. 평화라는 어젠다는 결코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평창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정치적 당리당략에 따라 반대한다면 결단코 이에 반대한다. 혹시라도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현 정권이 평창동계올림픽마저 성공적으로 치러내면 이후 정치적으로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하는 세력이 일부러 반대 목소리를 키우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정보기술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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