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패션계를 강타한 가장 강력한 트렌드 중 하나는 바로 포스트 소비에트(Post-Soviet)풍이다. 포스트 소비에트 스타일은 냉전 종식 후 자본주의에 거침없이 노출되기 시작한 러시아 젊은이들의 반항적인 패션 스타일을 의미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포스트 소비에트 이미지는 머리는 아무렇게나 민 스킨헤드에 스케이트보드와 코카콜라를 즐기며, 아디다스 같은 서양의 상징적인 브랜드를 천박하리만치 과시적으로 입어낸 거친 차림새들이다.

이 `막돼먹은` 스타일들이 지금 유럽 부유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어째서 유럽 엄친아들은 명품보다 포스트 소비에트에 끌리게 된 걸까?

흔히 `최악의 취향을 보여주는 멋진 스타일`이라고도 불리는 포스트 소비에트풍의 어떤 면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걸까.

현재 포스트 소비에트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대표적 3인방은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와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y),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로타 볼코바(Lotta Volkova)다. 바잘리아와 루브친스키는 2017년 현재 가장 핫한 디자이너들이며 볼코바 또한 가장 많은 매체들의 러브콜을 받는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이 셋은 또 서로 절친이기도 해서 서로의 쇼에 종종 모델을 서주기도 한다.

이들의 옷은 1990년대 러시아, 즉 냉전 종료 후 문화와 경제의 격동 중심에 서 있는 소련을 되돌아보게 한다. 당시 많은 러시아인들이 가난에 빠져 있었고, 이 3인방의 옷은 그런 가난과 낮은 지위, 세련되지 못한 취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당시 러시아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시대와 체제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더 적극적으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포스트 소비에트 패션은 일면 영화 `박열`을 닮아 있다. `박열`은 일제시대 조선인 아나키스트를 다룬 영화다. 구소련에서 아나키스트 패션이 존재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너무 매끈하게 가다듬어진 것들은 때로 진실성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우린 때로 너무 말끔한 것들, 너무 세련된 것들, 너무 익숙한 것들에 신물이 나는 순간들을 만난다. 특히 시대가 변혁을 맞이하는 격동기일 땐 더더욱 그렇다.

처음 `대중문화`의 혁명이 이뤄지던 1960년대에도 파격적인 것일수록 아름답게 취급됐다. 1960년대는 서민들도 누구나 유행하는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최초의 시기였고, 인류가 달에 가던 시기였다. 차마 지금도 입기 어려운 토플리스(Topless) 패션과 비닐 패션은 이 시기에 등장했고, 여성의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미니스커트도 이때 시작됐다.

과거의 룰을 지키는 것, 전통을 중시하는 미덕이 미래를 약속해주지 못할 때, 보수적 가치보다 진보적 가치들이 새로운 미래를 향한 열쇠로 보일 때 이 시대는 누군가의 눈에는 이변이 이변을 낳는 시대로 보일 것이요, 다른 누군가에겐 혁신이 혁신을 낳는 시대로 보일 것이다.

포스트 소비에트의 유행은 우리 시대가 지금 그런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과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같은 것들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우리는 과거와는 달리 10년 뒤의 미래도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줄어들 것인지, 반대로 얼마나 많은 기회가 생겨날 것인지는 살면서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돼버렸다.

이런 시기에 필요한 최고의 창의성(Creativity)은 더 서슬퍼렇게 날것(Raw), 즉 설령 거칠지라도 갓 캐낸 노다지처럼 섬뜩한, 아주 뚜렷한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치를 증명하는 길, 패션은 지금 그 길이 무엇인지를 끝없이 젊은이들에게 묻고 있다.

[김소희 김소희트렌드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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