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이돌을 꿈꾸는 101명의 연습생들이 있다. 그 이름도 거창한 `국민 프로듀서`로 둔갑한 시청자에 의해 문자 투표로 선택된 단 11명만이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할 수 있다. 얼마 전 종영한 Mnet의 `프로듀서101`의 포맷이다. 지난해 시즌1에서의 걸그룹에 이어 올해 시즌2에서 보이 그룹 `워너원`을 만들어낸 이 프로그램은 뽑힌 멤버뿐만 아니라 탈락한 연습생들도 팬덤을 끄는 등 여러 화제를 몰고 왔다.

첫 회에서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라 101명의 연습생들은 A부터 F등급까지 분류되어 옷 색깔, 노래 선택, 자리 배치까지 철저하게 차등을 받게 되고, 매주 득표순대로 하나둘씩 탈락되는 장면은 우리 일상의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민낯을 보여준다.

불편하게 만드는 여러 장치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국민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자신의 소년에게 열성적으로 투표한 이유는 연습생의 노력과 성실함에 동참하고픈 마음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노력에 따른 즉각적인 보상`이라는 환상이 비록 화면 속이지만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에 공감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등급으로 분류된 아이돌이 세계적인 케이팝을 만들었다면, 와인에도 엄격한 등급제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 와인 등급 체계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1855년, 보르도 상공회의소가 지역 내 61개의 생산자들을 5개 등급으로 분류하여 최고 등급 그랑크뤼 와인을 만들었고, 1932년 여기에서 탈락된 와인들이 자체적으로 크뤼 부르주아를 만든 것이 오늘날까지 보르도 와인의 등급으로 남아 있다. 150년도 더 된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샤토 무통 로칠드가 1973년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조정되었을 뿐 등급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부르고뉴 와인도 예외가 아니다. 부르고뉴 와인은 포도밭 단위로 특등급, 1등급 밭이 정해져 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진 생산자일지라도 특급 밭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저 그런 생산자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같은 이름의 포도밭마저도 자녀균등상속법에 따라 세월에 따라 소유자가 여러 명으로 쪼개지고 있으니 와인의 희소성과 가격은 매년 오르기만 한다.

프랑스 와인만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와인을 대상으로 100점 만점의 평가 점수를 부여하는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도 와인 등급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다. 사실 파커가 와인 평가를 시작한 1970년대만 하더라도 와인 양조의 일관성이 없어 많은 와인에서 기본적인 풍미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의 객관적인 점수로 인해 세계의 와인업계는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되고,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양조로 말미암아 세계 누구라도 좋은 와인을 만들고 마시게 되는 `와인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어느덧 그의 점수는 맹신이 되어 와인의 획일화를 가져왔고, 점수에 비례해 가격이 폭등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지적되고 있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프랑스 등급이나 전문가의 100점 와인과는 달리 워너원은 국민 프로듀서들에게 직접 선택되었다. 11명 멤버의 애초 전문가 등급은 A부터 F까지 망라돼 있고, 아이돌이지만 17살부터 27살까지 나이도 다양하다. 노래와 춤, 랩 등 포지션도 각기 다르다. 연습생 소속사도 각각 다르고, 심지어 기획사에 속하지 않은 개인 연습생도 선발되었다. 배경과 실력과 역할이 그야말로 균형점을 맞췄으니 여러 구설에도 불구하고 결국 집단지성의 힘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우리가 마실 와인도 이제는 태생과 전문가에 의존하는 선택이 아닌 우리가 직접 찾아보는 시대가 열렸다. 국민 프로듀서의 자격으로 당신의 와인을 한 병 두 병 선택하다 보면, 어느새 "니 맘을 훔칠" 11병의 와인이 다 모아지는 "오늘 밤, 주인공"은 당신이 될 것이다.

[장지호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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