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통기타가 한 대씩은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학창 시절 소풍이라도 떠나는 날엔 기타를 케이스에 넣지 않고 한쪽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돌들이 초청되는 지금의 대학 축제와 달리 오래전에는 통기타 한 대만을 들고 초대 가수가 축제 무대에 올라 연주를 시작하면 청중은 숨죽여 기타 선율과 목소리에 넋을 잃기도 했다. 사람들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사로잡던 기타에 관한 추억은 기타 그리고 기타 등등의 이야기로 아련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기타는 인류 문명과 역사를 함께해온 악기다. 기타의 어원은 고대 페르시아어 `Chartar(차타르)`에서 유래되었다. 8세기 초 사라센 제국의 무어인들이 800년간 스페인을 지배했던 기간 동안 아랍의 음유시인과 장인들이 그들의 악기와 음악을 스페인에 가져왔고 무어인들의 악기였던 모레스카와 스페인 사람들의 라티나가 함께 진화한 것이 기타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타와 같은 형태와 기능을 갖춘 것은 르네상스 시대다. 비발디, 바흐, 헨델 같은 거장들이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에는 스페인 마드리드를 비롯한 작은 지방의 아이들도 기타를 흔하게 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르네상스 음악의 근본인 민본주의 정신이 다시 꽃을 피웠던 고전주의 시대에 프랑스 혁명 정신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시민계급이 부상하면서 기타는 소수 귀족의 악기에서 일반 대중의 악기로 개량과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이후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제작자들이 기타 개량에 힘쓴 결과 오늘날과 같은 여섯 줄 기타가 전성기를 맞았으며 소르, 줄리아니, 카르카시 등 기타 음악을 발전시킨 작곡가들에 의해 18세기 후반 황금기를 맞이한다.

바이올린 제작의 신으로 불리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도 최상급 바로크 기타를 제작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기타 디자인 그리고 제작 방식의 완성자는 안토니오 데 토레스다. 7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타 300여 대를 만든 그의 제작 기법은 오늘날까지도 기타 제작의 성서처럼 전수되고 있다.

스페인에서 발명된 기타는 스페인의 토레스에 의해 현대적 구조를 완성하고 스페인의 기타 연주가 세고비아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다. "혹독한 연습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음악인이 못 된다." 그의 이 말은 열다섯 살에 이미 기량을 완성한 그의 힘겨운 독학의 여정을 짐작하게 한다.

기타를 독주 악기로서 예술적인 경지에 올려 놓은 세고비아는 94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은퇴 없이 연주를 지속했다. "기타는 신경질적인 여인처럼 다루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충성한다." 세고비아의 이 유명한 말처럼 기타는 사람과 같아서 사랑을 받지 못하면 소리로서 그 불만을 연주자에게 돌려준다.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 연주자 나르시소 예페스가 제작자 라미레스 3세의 공방에서 제자를 위해 기타 두 대를 주문해 갔는데 2년 뒤 예페스가 공방을 다시 방문하자 라미레스 3세가 기타의 상태를 물었다고 한다. 예페스가 대답했다. "악기 상태는 소유자의 성품에 따라 달라진다." 게으른 제자의 기타는 음색부터 외관까지 엉망이 되었지만 열심히 연습하며 기타를 아낀 제자의 기타는 명기가 되었다고 한다.

퇴보하지 않는 우리 음악의 전설 송창식은 대한민국 기타의 거장 함춘호와 기타 두 대로만 무대에서 노래를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방문한 선배 송창식을 보고 기타를 시작했다는 함춘호, 그는 그의 우상과 함께 행복하게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송창식은 함춘호의 기타가 마음에 들어 노래할 맛이 나는지도 모른다.

"친구같이 옆에서 마음을 나눈 지 어느덧 반세기를 넘어 이제 나는 기타의 몸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기타계 대부 신중현의 이 한마디처럼. 기타는 영원히 인류의 친구가 될 것이다.

[이두헌 경희대 포스트모던 음악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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