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타인을 처음 만나는 순간 탐색의 레이더를 가동시킨다. 탐색전에서 패션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어떤 지위의 사람인가, 어느 정도 재력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취향과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가 등등 패션이 암시하는 영역이 꽤 넓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각자 패션을 통해 어필하려는 부분, 즉 `패션 취향`이라는 것들을 갖게 된다. 누군가는 부유해 보이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자유분방해 보이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참하고 성실해 보이길, 또 누군가는 지적으로 보이길 원한다. 그리고 여기에 `유행`이란 요소가 작용하면서, 시대별로 특정한 유형의 사람들이 더 환영받는, 독특한 무드가 형성된다.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에는 전 사회적으로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이 유독 환영받았다. 너도나도 부자가 되기를 꿈꾸었고, 중산층임을 입증하려면 명품 하나씩은 가져야 했다. 당시는 적어도 명품이 무언지 정도는 이해하는 것이 사회적 교양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사회적으로 환영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정부 출범 후, 환영받는 이들의 실체는 더 뚜렷해진 듯하다. 부유한 자들의 추태, 가진 자들의 추태에 물릴 대로 물려버린 지금, 환영받는 사람들의 대세는 바로 `좋은 사람들`이다.

좋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마땅한 일을 하는 사람들, 과시적이지 않은 사람들,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 책무에 성실히 임하는 사람들. 그들의 패션은 과연 어떠할까. 얼마 전 미국의 한 신문에서 읽은 기사다. 시골 출신의 한 리포터는 뉴욕 중심가에 칼하트(Carhartt)란 브랜드가 고급 패션 스토어에서 판매되는 것을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왜 칼하트가 뉴욕 한복판에서 저렇게 팔리고 있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칼하트는 미국 중부지방에서는 작업부츠나 장갑을 구입하는 곳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작업복 상표로 잘 알려져 있다. 그에게 칼하트는 고향의 삼촌들이 농장 일을 할 때 입는 옷이지, 맨해튼의 패셔니스타들이 멋내기 위해 입을 옷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워크웨어(Workwear)는 지금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번지고 있다. 워크웨어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칼하트나 디키즈(Dickies)를 중심으로 한 빈티지 워크웨어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고, 가까이 일본에서는 1950년대 미국 노동자복에서 깊은 영감을 얻은 아메카지(Amekaji) 열풍이 불고 있다. 아메카지는 아메리카란 단어와 캐주얼이란 단어를 일본식으로 붙여 만든 이름이다.

지금 워크웨어가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기사의 리포터는 네브래스카 대학의 교수 네이선 파머(Nathan Palmer)의 말을 빌려 노동복의 유행에 대해 이렇게 썼다. "오래도록 깊이 새겨진 삶에 대한 이상(理想)이라는 것들이 있다. 그들 중 하나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도덕적이란 생각이다." 잃어버린 도덕적 이상에 대한 향수, 어쩌면 우리가 좋은 사람들을 갈망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도시의 화이트칼라들이 워크웨어를 선택하는 이유는 `나는 속물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 즉 적어도 나는 도덕적 가치와 삶이 주는 의미, 땀과 세월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다. 그들은 변덕스러운 멋쟁이보다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좋은 사람`을 갈구하는 지금은 소위 안티패션(Anti-fashion)의 시대다. 더 부유해 보이고 말쑥한 스타일보다, 고지식하고 남루해 보이는 옷들이 더 깊이 있어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이 현실화되면서 블루칼라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복장은 덕성(德性)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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