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축적의 산물이다. 수없이 많은 장르의 탄생 이면에는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쌓인 방대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경험이라는 창조적 역량이 서로 결합하고 소통한 수많은 사례가 가득하다. 오늘날 한국 경제는 기업의 성과와 잠재 성장률의 추세적 하락이라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검증된 실패와 오랜 경험을 축적하기보다 일시적 총력 동원의 성과주의 기업문화가 지속되어온 아픈 결과는 산업 전반에 성장의 한계를 내보이고 있다. 음악의 창조적이고 새로운 장르들의 탄생에 담긴 `축적의 지혜`를 통해 거듭나야 할 우리 기업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1.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결합하라

블루스는 서아프리카로부터 미국 남부 지역에 강제로 끌려와 고된 노동을 하게 된 흑인들의 음악이며, 컨트리라는 장르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경계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산속에 은거해 살게 된 백인들의 음악이다. 흑인들의 블루스는 음악의 형식 등에서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전통음악과 결합했고 컨트리 또한 자유를 위해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탈출을 감행한 흑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발전하게 된다. 블루스와 컨트리라는 이질적인 두 장르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의 결합은 리듬&블루스를 거쳐 로큰롤이라는 파격적인 신제품을 만들었고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새로운 영웅을 통해 전 세계가 미국의 음악을 소비하게 되는 신수요를 창출했다.

2. 기록과 업적을 보존하라

미국은 길지 않은 역사에 대한 열등감을 기록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 도구를 활용하여 상쇄하고 있다. 미국의 61번 고속도로는 뉴올리언스에서 미네소타까지 장장 2300㎞에 이르는 도로이다. 이 도로 주변에는 170여 개의 블루스 음악 관련 유적지가 자세한 배경 설명과 함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멤피스의 선 스튜디오(Sun studio)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데뷔 전 어머니의 생일선물로 4달러를 지불하고 자신의 노래를 녹음한 녹음실과 마이크가 보관되어 있다. 축적은 기억의 보관이라는 작은 시작에서 비롯되며 지속적이고 일관된 노력에 의해 새로운 창조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3. 기초를 축적하라

흑인들의 리듬&블루스를 발전시킨 로큰롤은 백인들의 음악이 되어버렸다. 주류 음악시장은 로큰롤이 대세가 되었고 시장을 잃어버린 흑인 뮤지션들은 새로운 대안으로 소울 음악을 탄생시킨다. 음반사들이 완성된 음악을 쉽게 채택하기만 하면 성공했던 로큰롤 시기에 소울은 개발의 여지가 남아 있고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새로운 장르였다. 하지만 흑인 영가부터 재즈, 가스펠, 리듬&블루스 등 탄탄한 기초를 가진 장르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결합하고 핵심 인력을 키워온 소울은 음악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며 거의 모든 현대 팝음악 장르의 기초가 된다. 서로 다른 산업 분야의 단순 결합을 넘어 기초가 탄탄한 산업 간의 장기적인 경험의 융합이 새로운 창조의 밑거름인 것이다.

4. 힙합처럼 리드하라

댄스파티에서 디스코 음반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 식상해질 즈음 자메이카 출신 디제이 쿨 허크는 초기 리듬&블루스와 펑크 음반을 선곡하고 리듬만 나오는 브레이크 부분에 말을 섞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러한 브레이크에 나와서 춤을 추는 사람을 비보이(B-Boy)라고 불렀으며 그 춤은 브레이크 댄스라고 알려지게 된다.

힙합이라는 장르는 다양한 시도를 축적하며 전문 래퍼를 고용하여 직설적인 가사를 독특한 운율로 발전시키고 비트를 강조하는 파격으로 음악계의 주류로 변모한다. 힙합은 추격형 장르가 아니라 리더형 장르이다. 단순하게 기존의 장르를 모방하고 차용하는 단계를 넘어 서부와 동부 등 지역적으로, 음악적으로 분화된 진화와 장르의 스케일 업을 통해 가장 짧은 시간에 음악계를 점령한 리더가 된 것이다.

새롭다는 것, 혁신적이라는 것은 차곡차곡 쌓여온 실패와 성공의 경험과 기록의 집합이다. 도전에 직면할수록 강해졌고 새로워졌던 음악 속의 혁신적인 장르의 탄생은 조급함을 버리고 인내를 축적한 결과인 것이다.

[이두헌 경희대 포스트모던 음악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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