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살펴보니

서울역 고가 보행길 `서울로`가 개장한 후 100일 동안 360만명의 사람들이 찾았다는 뉴스를 봤다. 퇴근길에 종종 회사 앞에 있는 서울로를 걷곤 하는데, 고가에서 바라본 도시 뷰는 꽤 멋지다. 일몰 무렵 조명이 밝혀지면 낮보다 더 많은 관광객과 보행자로 붐빈다. 서울역사와 숭례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가족은 물론 도심 속 차량 행렬이 만들어내는 야경을 촬영하는 출사족, 서울스퀘어의 미디어파사드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외국인 관광객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빌딩숲 사이로 오래된 건축물과 미디어아트, 조명이 어우러진 서울로의 야경은 독특한 인상을 준다. 서울역 주변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문화적 자산을 한꺼번에 조망해볼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울로는 사용하지 않는 철길에 꽃과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만든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사람을 위한 길보다는 차를 위한 길에 더 집중돼 있는 서울에 이런 공원이 생겼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왜 서울 `파크(Park)`가 아니라 `로(路)`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서울로를 브랜딩한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공원보다는 길로 불렸을 때 시민들로부터 더욱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공원은 휴식시간에 찾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는 데 반해 `길`은 24시간 열려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밤에도 새벽에도 걷기 위해 찾아온다는 설명이었다. 확장성과 유연성을 고려한 디자인을 근간으로 도시에 역동적인 문화를 선사한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이자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세 가지 분야의 수상작이 모두 공개됐다. 수상작들의 일면을 살펴보니 좋은 디자인은 역시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생각과 함께 신진 디자인 강호들의 부상이 무섭게 느껴졌다. 한때 카피(copy)의 왕국이라는 오명을 얻었던 중국은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모이는 시장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고유의 문화적 자산과 자부심에 모바일 기술을 더한 `중국식 크리에이티브(Chinese Creative)`로 전 세계 디자인 어워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레드닷의 세 가지 부문 중 가장 최근인 2005년에 신설된 디자인 콘셉트 부문에서는 아시아권 국가들의 도전이 눈에 띄었다. 디자인 콘셉트 부문은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발굴하기 위한 상으로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제품이 상을 받기도 하고, 참가자도 일반 기업에서부터 디자인 전공 학생까지 다양하다. 공공장소, 모바일 라이프, 신소재 등 미래지향적 디자인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 또한 무궁무진하다. 그 때문인지 최근 5년간의 수상 실적으로 집계한 순위를 보면 톱15 안에 아시아권 기업이 10곳, 디자인 스튜디오가 8곳 포진해 있다. 특히 디자인 콘셉트 부문이나 소비자와의 교감을 바탕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에서는 국내 기업들도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올해 수상작으로 발탁된 국내 브랜드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첫째, 특유의 문화적 자산을 재창조했다. 올해 레드닷 어워드 타이포그라피(Typography) 분야에서 최고상(Best of the Best)을 수상한 롯데면세점의 `마이롯데체`는 전통적인 동양의 문화 `오리가미(종이접기)` 패턴을 재해석해 진취적이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양한 국가의 소비자와 소통하는 만큼 서체의 확장성도 고려해 국문, 영문, 중문 등 여러 언어를 섞어서 구성했을 때도 한 벌의 서체처럼 보이는 조화로움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본디 조선시대 세종, 정조 등 타이포그라피에 일가견 있는 왕을 두었던 활자 강국 아니던가.

둘째, 친밀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디테일을 부여했다. 레드닷 리테일 디자인 분야에서 수상한 롯데마트의 `어반 포레스트(Urban Forest)`는 대형마트에서 가장 매상이 많이 나오는 1층을 상품 대신 힐링 아이템으로 채우는 공간 실험을 했다. 한 층 전체에 나무와 담쟁이 덩굴 등을 설치해 도심숲을 조성하고 은은한 식물 향도 나도록 했다. 매장을 누구나 자유롭게 앉아서 편히 쉴 수 있는 소통 플랫폼으로 바꿨더니 오히려 체류시간과 매출이 상승하는 효과가 났다. 온라인 쇼핑몰의 거센 도전 속에서 오프라인만이 가진 장점인 `공간`을 재창조하는 실험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무형의 서비스를 시각적 형태로 가치 있게 표현해야 하는 브랜드에서 눈여겨볼 점이 있다. 브랜드를 경험할 소비자에게 놀라움 혹은 기대감을 주는 디자인 요소를 심어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디자인 콘셉트 부문에서 수상한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의 `스카이셔틀`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초고층빌딩 전망대로 향하는 더블데크 엘리베이터다. 123층 전망대를 오르는 관람객들에게 기대감을 높이고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내부의 벽면과 천장 3면에 OLED 화면을 설치하고 마치 4D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으로 몰입감을 주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레드닷의 창립자 페터 제흐(Peter Zec)는 디자인 어워드와 올림픽을 비교하면서 스포츠는 기록이나 점수로 우승자를 가려내지만 디자인상은 해당 국가의 시장 환경, 소비자 등 사회적 맥락까지 읽어야 한다며 평가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모든 수상작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제품이든 서비스이든 고객의 경험을 잘 디자인하고 친근하게 스며들어야 훌륭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곽용덕 대홍기획 디자인마케팅센터 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