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시대다. 단적으로 SNS만 봐도 140자의 짧은 텍스트로 말하는 트위터에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함께 보여주는 페이스북으로, 그리고 이미지 위주의 인스타그램으로 대세의 흐름이 변했다. 빼곡한 텍스트 위주였던 신문 기사도 사진 한 장은 필수, 인포그래픽도 자주 동원되고 읽기 좋게 이미지와 결합하여 카드 뉴스 형식으로 재편집되기도 한다. 그렇다.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메시지를 담고 있는 텍스트는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지금은 바야흐로 비주얼 시대다.

시대가 이러니 반드시 눈에 띄어야 하고 꼭 기억에 남아야 하는 광고가 점점 더 독특한 비주얼과 화려하고 현란한 비주얼, 더 감동적인 비주얼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다 기술이 좋아져서 구현해낼 수 있는 비주얼은 더 다양해졌다.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해서 현실처럼 생생하게 몰입할 수 있는 비주얼도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광고에서의 비주얼에 대한 기대나 의존도가 전에 없이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광고에서 `역발상`은 언제나 파워풀하지 않던가. 너도나도 임팩트 있는 비주얼을 찾기 때문에 오히려 잘 쓰인 `임팩트 없는` 비주얼이 광고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고 임팩트를 더해주기도 한다는 말이다.

2017 칸 라이언즈(칸 국제광고제) 필름 부문과 통합 부문에서 은상을 차지한 나이키의 `Time is precious` 캠페인을 보자. 이 시대의 스크린 중독(스마트폰, 노트북 등 각종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한 SNS와 디지털 영상·미디어 소비 중독)은 사람들을 움직이지 않게 만들었다. 스크린을 통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나이키는 당신이 지금 스크린을 통해 소비하고 있는 그것들은 사실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당신의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런 것들을 소비하는 데 매일 10시간, 1년 중 152일, 사람의 인생에서 자그마치 32년에 달하는 시간을 버리고 있다며 그 시간에 스크린 밖으로 나와 러닝을 하고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라고, 시간은 소중하다(Time is precious)고 말한다.

디지털 디바이스를 손에서 놓고 (나이키와 함께) 운동을 하자는 광고지만 이전 나이키 광고에서 보던 감동적인 스포츠 명장면, 자신의 한계를 땀으로 극복하는 모습이나 운동을 즐기는 모습 같은 것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광고는 그저 새카만 화면에 심플한 서체로 쓰인 텍스트와 그것을 읽는, 감정이 일체 배제된 아이폰의 인공지능(AI) 비서 시리(Siri)의 목소리뿐이다. 그렇게 비주얼을 철저하게 비우고, 날카로운 카피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이 광고는 스크린에서 벗어나자는 메시지를 더 예리하고 묵직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국내 광고 중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영업 시작 5일 만에 계좌 100만개를 돌파하며 은행업계 돌풍을 일으킨 카카오뱅크의 `같지만 다른 은행` 광고 캠페인이 그것이다.

광고는 내내 카카오뱅크 사용자인터페이스(UI)에만 집중한다. 크게 띄워 놓긴 했지만 그렇다고 UI상의 특정 부분이나 어떤 액션에 대한 비주얼적인 강조가 있는 것도 아니다. UI 화면과 극대비를 이뤄 화면 한쪽에 등장하는 작은 사람들 모습은 발견하면 깨알 재미가 되지만, UI를 보는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으로만 나와 UI를 보고 있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UI만 흐르는 광고가 담백하다 못해 심심해지려는 찰나, "도현아~"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광고의 목소리 주인공들은 최근 JTBC 예능프로그램 `비긴어게인`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윤도현과 이소라다. 둘은 마치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두런두런 카카오뱅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담백함과 심심함의 경계에 있는 `임팩트 없는` 비주얼이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익숙하고 친근한 목소리들의 대화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신기하게도 대화를 들으며 따라가다보면 강조된 적이 없어도 UI의 작은 부분까지 눈에 들어오게 된다. 결국 이 광고는 힘을 주지 않은, `임팩트 없는` 비주얼을 통해 많은 양의 메시지를 다 듣게 만들고 무리해서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UI를 다 보게 만든 것이다. 생각할수록 임팩트 있는 광고가 아닐 수 없다.

비주얼 시대다. 광고에서도 비주얼의 역할은 전에 없이 중요하지만, 임팩트 있는 비주얼만이 광고의 임팩트를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양희선 SK플래닛 M&C부문 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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