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효과 극대화시키는 노래들

노래로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적을 친구로 만들 수 있을까? 답은 예스다. 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전장에도 크리스마스 이브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대치 중이던 영국군과 독일군은 각자의 참호 속에서 성탄 전야를 맞이했다. 간간이 총탄 소리만이 들리던 그 밤, 어디선가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Stille Nacht, heilige Nacht)." 독일어로 시작된 노래는 곧 영국군과 독일군의 합창이 돼 전장을 메웠다. 직전까지도 총을 겨눴던 두 군대는 노랫말처럼 거룩한 휴전을 맺고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선물 같은 하루가 지나 군인들이 각자의 위치로 돌아왔을 때, 한 영국 병사의 주머니 속에는 독일 병사가 넣어둔 비스킷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독일 병사의 주머니 속에도 영국 친구가 넣어둔 세인스버리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는 이야기.

사실 이는 광고의 한 장면이지만 실망하지는 말길 바란다. 1914년 벨기에 이프르 전선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2014년 영국의 대형 마켓 세인스버리(Sainsbury`s)가 왕립영국군대와의 파트너십을 기념해 제작했다.

전쟁터 속 캐럴처럼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 노래가 있는가 하면, 어떤 노래는 위대한 연설을 대신하기도 한다. TV에 한 밴드가 등장한다. 그런데 모습이 좀 이상하다. 드럼 채를 잡은 건 발이고 가수는 휠체어에 타고 있다. 장애인 밴드와 장애인 운동선수들을 주인공으로 해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만들어진 이 영상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브라질 방송채널 `채널4(Channel4)`가 만든 광고다.

보통 장애나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출연하는 광고 캠페인은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라는 주제에 웅장한 배경음악과 멋진 카피를 곁들여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이 광고는 그런 기대를 기분 좋게 배신한다. 등장인물의 하루는 평범하다. 아이는 밥을 먹고, 엄마는 아이를 안아준다. 학생은 수업시간에 손을 들어 발표하고, 선수는 트랙을 달린다. 다만 손 대신 발을, 의수를, 혹은 휠체어를 사용할 뿐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다. 장애인 선수의 싸움은 경기장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경쟁자는 더 높은 기록을 가진 상대 선수가 아니라 그들을 향해 "안 돼, 넌 할 수 없어(No, you can`t)"라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세상을 향해 밴드는 밝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난 할 수 있어(Yes, I can)"라고. 주제는 무겁지만 가사는 사뿐하고, 그림은 진지하지만 멜로디는 한없이 경쾌하다. 세상은 그들을 장애인이라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 "우리는 초인(We`re the superhumans)"이라고. 2017년 칸 라이언즈(옛 칸 국제광고제)는 그들에게 필름 부문 그랑프리로 화답했다.

이와 같이 노래는 광고 밖에서나 안에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따뜻하고 경쾌한 위로가 돼 주는 노래도 있다. 이번에는 대한민국이다. 어느 주유소에 차 한 대가 들어온다. 운전자는 서른을 갓 넘겼을까. 그런데 그녀의 표정은 옆자리에 놓인 낡은 기타처럼 생기가 없다. 힘없는 그녀의 차에 기름이 채워진다. 그러자 상황은 달라진다. 반짝이는 불빛, 화려한 배경과 함께 주유소가 뮤지컬 무대로 바뀐다. 현실에선 조명받지 못했던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그녀의 노래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넘어진 걸 생각해보면, 난 우주에서 1등일거야" "이곳에서 나를 채워 이젠 꿈에 도착할 때 (중략) 오늘일 거야 좋은 일이 Perfect day, 그런 예감이 들어". 에쓰오일 광고의 한 장면이다. 위트 있는 가사에 춤이 더해지고 분위기는 고조된다. 꿈을 이루며 사는 것이 꿈 같은 일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그녀는 여전히 꿈을 노래한다. 장면은 곧 현실로 바뀌고 그녀의 낡은 기타도 자동차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다시 힘을 얻은 그녀는 기분 좋게 출발한다. 그 위로 `좋은 기름은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카피가 뜬다.

마치 한편의 뮤지컬 같은 광고다. 광고지만 브랜드는 제품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노래를 통해 2017년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을 살아 내느라 힘겨운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발걸음은 무지개 너머 어딘가를 향한다.

자동차에 기름을 채워 넣듯, 내 안에 힘을 채우고 더디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엔 어쩐지 그 꿈에 도착할 것만 같다. 그런 좋은 예감이 든다. 노래와 함께라면 말이다.

[이예훈 제일기획 CD(Creative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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