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커뮤니케이션의 주도권이 TV와 같은 매스미디어에서 디지털 채널로 넘어가면서 소비자들 사이의 공유는 기업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성과 목표가 됐다. 브랜드는 자신들이 송출한 콘텐츠가 단순히 `전달`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확산`되길 원한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무엇을 공유하길 원할까. 새로운 TV 광고? 재미있는 유튜브 바이럴 영상? 동시에 수만 명이 볼 수 있고 누구나 클릭 한 번으로 SNS에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들은 매력적이고 차별화된 나만의 경험이라 자랑하기엔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브랜드는 고객들에게 자신들의 상품, 서비스, 철학 등 브랜드 가치를 실체적 경험으로 전달하길 원하고, 고객은 그 경험 속에 내재된 `브랜드 DNA`를 자신만의 경험이 스며 있는 각자의 콘텐츠로 재생산해 공유하길 원한다.

최근 기업들이 브랜드 스페이스(브랜드 콘텐츠와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구축에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런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 고객과 데이트 장소를 찾아온 젊은 고객, 당장 제품 구매를 원하는 고객은 저마다 각자의 상황에 맞춰 브랜드 스페이스에서의 경험을 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과 이미지를 타인과 공유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브랜드 스페이스 붐을 일으킨 계기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차별화된 컬처브랜딩(Culture Branding)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던 현대카드는 2013년부터 지적브랜딩(Intellectual Branding) 플랫폼으로 `라이브러리`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디자인 라이브러리, 트래블 라이브러리, 뮤직 라이브러리에 이어 최근 쿠킹 라이브러리까지 선보인 현대카드 사례는 이후 등장하는 여러 브랜드 스페이스들의 준거점이 되었다.

현대카드 라이브러리가 시발점이었다면, 일본의 쓰타야서점이 거둔 큰 성과는 또 한번 국내 브랜드들이 공간마케팅에 열중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됐다. 한동안 쓰타야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 기업 마케팅 담당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처럼 열심히 벤치마킹을 다녀온 브랜드 담당자들이 정작 자신의 브랜드 스페이스를 구축할 때엔 비슷한 오류를 범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건물의 화려한 외관과 공간을 가득 채운 방문객들의 행렬에 경도되어버린 브랜드 담당자일수록 다음과 같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첫 번째는 복합화의 함정이다. 최근 만들어지는 브랜드 스페이스 대부분이 복합문화공간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유명한 커피전문점도 입점시키고, 저명한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통해 갤러리도 만들고, 요즘 인기 있는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도 연다. 또 이왕이면 도서관도 하나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복합문화공간`이란 말이 `나만의 브랜드 DNA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의미로 이해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큰 예산을 들여 만든 브랜드 스페이스에 방문객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 마케터는 방문객을 유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만 하면 그것이 자신의 브랜드와 관련성이 떨어지더라도 일단 구색은 갖추어야 안심이 된다.

본질적인 브랜드 DNA를 고민하기보다 일시적으로 방문객 수를 늘릴 수 있는 이벤트 프로모션에만 매달리는 마케터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브랜드 스페이스는 그 자체만으로 고객들이 방문할 수 있는 명확한 목적성을 띤 공간이어야 한다. 하루 평균 방문객이 몇 명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그 안에서 브랜드와 관련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공유하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차별화의 함정이다. 브랜드 스페이스는 건축이나 인테리어의 경연장이 아니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웅장한 외관이나 화려한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부분의 예산을 투입하고 응당 그 공간에서 전달해야 할 경험 요소들의 개발에는 소홀한 사례가 종종 있다. 물론 브랜드의 의미를 창조적으로 해석해낸 건축이나 세련된 인테리어는 브랜드 DNA를 전달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하지만 부실한 경험을 화려한 포장지로 채워놓고 다른 브랜드 스페이스와 차별화했다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최근 오픈한 기아자동차의 브랜드 스페이스 청담동 기아 비트360(BEAT360)을 만들면서 이형근 기아차 부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고객들이 편안하게 자동차를 살펴볼 수 있도록 너무 과하지 않은 분위기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억지로 여러 가지 콘텐츠를 채워넣어서 자동차가 액세서리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고객들에게 기아차가 어떤 브랜드라는 걸 강요하지도 말았으면 합니다." 이런 생각이 벤치마크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박명진 이노션 콘텐츠크리에이티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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