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식사 후 참모들과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이슈가 됐다. 식사 후 주변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지만 이 사진을 본 사람 중 여럿이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식후 커피 한잔 마셨을 뿐인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새로운 자극보다 따뜻한 당연함에 더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이 있다.

화려한 볼거리와 멋진 영상미가 주를 이루는 자동차 광고계에서도 최근 비슷한 사례가 눈길을 끌고 있다. 차가 멋지게 등장하지도 않고 젊고 트렌디한 모델이 나오지도 않는 이 광고는 잔잔하고 담백한 2분 분량의 드라마 형식으로 사랑하는 손녀에게 차를 선물해주기 위해 심사숙고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배우 신구 씨가 연기하는 할아버지는 안전한 차를 구매하기 위해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며 자동차 매장을 수시로 방문한다. 자동차 판매 직원은 지겨울 만큼 매장을 찾아오는 할아버지를 끝까지 친절하게 응대하며 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구입할 차를 선택하고 이를 손녀딸에게 선물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법한 스토리가 끝나갈 때쯤 "스파크에는 소중한 사람이 탑니다"라는 엔딩 메시지와 함께 할아버지의 따뜻한 미소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자동차는 안전과 직결된 제품이고 그 자동차의 운전자는 구매자 또는 그 구매자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자동차를 구매할 때 안전성이 가장 신중하고 꼼꼼히 고려돼야 함은 당연하다. 그리고 차를 판매하는 딜러는 그런 손님에게 친절히 응대하며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대배우가 열연한 것을 빼놓고 본다면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특별할 것 없는 당연한 이야기가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캠페인 시작 후 약 2주 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100만명이 넘는 소비자가 영상을 봤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짧고 쉬운 콘텐츠가 주류를 이루는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이 2분 분량의 긴 동영상을 `스킵(Skip)`하지 않고 끝까지 시청했다는 점이다.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나냐…." 이 광고 영상을 본 어느 시청자가 SNS에 올린 피드백이다. 그렇다. 이게 뭐라고.

광고에 있어 독특함이란 캠페인의 성공을 위해 꼭 갖춰야 하는 필수조건이다. 매일 수많은 제품의 광고가 쏟아지는 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에게 특별한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광고 제작자들은 특별한 비주얼과 사운드 등 다양한 기법을 이용해 독특함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최근 사람들이 당연하고 익숙한 상황을 담은 콘텐츠에 보이는 반응은 이와 같은 독특함의 누적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광고뿐만 아니라 다른 콘텐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TV쇼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과거에는 독특한 미션과 경쟁 위주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요즘은 단순히 그리고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며 밥 한 끼 해먹는 슬로(Slow)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프랑스 칸에서 열린 광고계의 빅 이벤트 `칸 라이언스(칸 국제광고제)`에서도 이 같은 트렌드가 전 세계 광고 마케팅 관계자들에게 소개됐다. 특히 한국 슬로 프로그램의 대표주자인 `삼시세끼` `윤식당` 등에서 호흡을 맞춘 나영석 PD와 배우 이서진 씨는 칸 세미나 무대에 올라 "한 발짝만 내디디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즉 공감할 수 있는 `판타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설명하며 평범함(ordinary)이 놀라움(extraordinary)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눈이 세 개인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눈이 두 개인 사람이 특이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시끄러울 때는 나지막이 메시지를 던지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스파크 광고처럼 어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광고가 소비자들의 눈에 더 돋보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런 마케팅적 기법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회구조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지만 사람의 감정은 늘 단순하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혁신과 기술을 경험하며 살아가지만 기본적으로 의식주 안에서 주변 사람들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것은 변치 않는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복잡한 기법이 아니다. 누구나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인간적 진실(Human Truth)`이 사람을 움직인다. 말 없이 바라보며 미소 짓는 할아버지의 표정에 갑자기 가슴이 울컥해지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피곤한 아르바이트생은 그 어떤 선물보다 친구의 응원 메시지에 더 힘이 나고, 세탁기를 선물받은 부모님은 편리해질 생활보다 딸의 마음 씀씀이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 한마디로 인간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러므로 독특하진 않지만 당연하고 익숙한 상황이 주는 따뜻한 공감에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독특함만 추구하느라 넘쳐나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자극에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광고인이기 전에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갖고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미디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당연함이 주는 특별한 감정을 더 많이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장재혁 제일기획 CD (Creative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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