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개봉한 영화 HER(그녀)는 인공지능 컴퓨터 운영체제(OS)인 사만다와 대필작가인 테오도르의 사랑을 그린 SF 로맨스 영화다. 극 중에서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사만다, 지금 뭐하고 있어?" "피아노 곡을 쓰고 있지." "그래, 들려줄래? 뭐에 관한 곡이야?" "우리 같이 찍은 사진이 없기에. 대신 이 곡을 그냥 사진 하려고.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을 담아서." "우리 사진 맘에 들어. 그 안에 네가 보여." "응, 난 있으니까." 인공지능인 사만다가 함께 손잡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연인 테오도르를 위해 피아노곡을 작곡한다. 테오도르는 그 곡을 들으며 사만다가 정말 함께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에 큰 위안을 받는다.

물론 이건 사이언스 픽션 영화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작년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한국의 세계적인 프로바둑기사 이세돌을 꺾은 것처럼 말이다. 당시엔 수십 년 안에 인공지능이 사람을 지배할 거라는 충격적인 기사들도 많이 나왔지만, 이후 기술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깊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기업의 광고 커뮤니케이션 활동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기술,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기술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혁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됐지만 최근엔 기술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나아지게 할지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의 축제인 칸 국제광고제(Cannes Creative Festival)에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기술에 늘 높은 점수를 주고 큰 박수를 쳐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는 광고 2편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태국의 셋세이션 청각장애학교(Setsatian School for the Deaf)의 광고다. 청각장애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말을 할 수 없는 증상을 언어장애라고 하는데, 태국에서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은 100만명 이상이지만 그들의 의사소통 수단인 수화를 하는 사람은 1만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학교에서는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과 일반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획기적인 커뮤니케이션 앱 `고요의 목소리(Voice of Silent)`를 개발했다. 이 앱은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의 입술 움직임을 추적해 음성으로 변환해준다. 입술 모양을 읽는 기술이 적용됐다. 스마트폰 후면의 카메라가 자신의 입을 찍을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입 앞에 가져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면, 상대방을 향해 있는 스마트폰 화면에는 입술 모양이 움직이며 음성으로 변환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이를 통해 상대방에게 말을 걸 수 있다. 이 앱에는 "얼마입니까" "배가 아파요"처럼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대화들을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답답함을 잘 헤아리고 있었기에 담을 수 있었던 대화다.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도 일반 사람들처럼 똑같이 생활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불편함은 없어야 한다는 청각장애학교의 따뜻한 마음이 잘 담긴 앱. 단순히 입술 모양을 읽는 기술보다도 그 기술에 담긴 마음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었기에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올해로 33년째를 맞아 새롭게 론칭한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공익 캠페인이 있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은 전국 곳곳에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어오며 숲의 가치와 숲과 사람의 공존에 대해 전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캠페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캠페인이 학업과 취업 등 수많은 경쟁에 지친 젊은 층을 위로하는 `숲에 가고픈 날-숲픈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숲픈날`이라는 모바일 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앱을 실행하면 청춘을 대변하는 세 아티스트 옥상달빛, 팔로알토, 신현희와 김루트의 신곡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GPS(위성항법장치)와 지오펜스(위치기반 서비스를 이용해 특정 지리적인 영역에 설치하는 가상 울타리) 기술을 이용해 전국 405개의 숲에서만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새롭다.

`숲픈날` 앱을 받은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듣기 위해 가까운 숲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숲을 거닐며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노래를 듣고, 노래를 들으며 잠시 벤치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쉬기도 한다.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어쩌면 이름 모를 작은 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노래를 다 듣고 이어폰을 빼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 숲을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렇게 오랜만에 숲에 와서 잠깐의 산책을 하고 나면 숲에 들어올 때와는 달리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숲이 좋은 건 누구나 안다. 숲에 와 달라고 얘기하는 방법도 많다. 하지만 진짜 발길을 숲으로 돌리고 숲을 찾아오게 만드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다. 그래서 젊은 층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지오펜스라는 기술로 그들을 자연스럽게 숲으로 이끌고 있는 숲픈날 프로젝트는 아주 영리한 작전이면서도 숲을 통해 그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다는 진심이 담긴 캠페인이기도 하다.

태국의 청각 장애 학교의 `고요의 목소리` 앱과 유한킴벌리의 `숲픈날`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을 이용해 사람을 위로하는 광고들을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기술이 발전하는 방향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방향과 닮아 있겠구나`라는 생각.

[노의선 SK플래닛 M&C부문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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