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고 다닌다는 말은 누구나 게임기를 갖고 다닌다는 말이다. 전 국민이 게임기를 갖고 있는 시대, 지금 앱스토어에서는 모바일 게임들이 영화 박스오피스만큼이나 치열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매주 새로운 영화들이 개봉되고 호기 있게 개봉한 영화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수많은 게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다. 올해 국내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4조2356억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게임광고 시장도 빠르게 커졌다. 2014년 모 게임 개발사가 처음으로 100억원대의 마케팅 비용을 투입한 이후 국내 모바일 게임 광고 집행 비용은 급상승했다. 2014년 695억원대에서 2015년 2821억원대로 4배나 성장했다. TV에서는 점점 더 많은 게임광고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화려한 기법들이 동원되고 유행처럼 톱스타들이 게임광고 모델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2년, 미국의 TV 제작업체였던 마그나복스사가 제작한 세계 최초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오디세이`의 광고는 그저 단순한 제품 알리기에 불과했다. TV 브라운관에 투박한 패널을 부착시키고 가족들과 같이 즐기는 모습과 함께 `당신의 TV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다(A new dimension for your television)`란 카피가 나올 뿐이다. 게임시장 최초의 광고는 `게임`이 아닌 `게임기`였다.

이후 빠른 기술의 성장과 함께 게임시장도 성장해갔다. 게임 속에서 구현 가능한 표현 제약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점차 한편의 영화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을 가진 게임들이 탄생하기 시작했고, 게임시장의 광고 또한 점차 하드웨어인 `게임기`에서 소프트웨어인 `게임` 중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첫 화면. 쓸쓸한 음악과 함께 쓰러진 한 소녀의 눈동자 클로즈업으로 광고는 시작된다. 피투성이가 된 소녀의 눈동자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좀비들에게 쫓기는 소녀의 모습들이 회상 장면처럼 보여지는 순간, 소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라 소녀가 한 건물의 창문에서 떨어지기 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의 순서를 거꾸로 돌린 `되감기 기법`이다. 건물 안에서 소녀의 아버지는 좀비에게 물린 딸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 보지만 소녀는 이내 좀비로 변해버리고 그 힘겨운 저항은 막이 내린다. 광고의 마지막은 가족들과 단란한 휴가를 보내기 위해 휴양지를 찾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스토리를 가진 이 광고는 다름 아닌 2011년 칸 국제광고제 인터넷 필름 부문 `금상`을 수상한 게임 `데드 아일랜드`의 광고다.

이 광고처럼 게임은 더 이상 게임 그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과거 괴물에게 잡혀간 공주를 구출하는 덩킹콩, 슈퍼마리오와 같은 스토리는 지금의 게임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거대한 세계관 아래 복잡하고 반전이 있으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게임의 스토리는 제품을 넘어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게임의 스토리가 책으로 발매되거나 영화로 제작되는 사례들도 최근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마블 시네마에서는 하나의 영화를 개봉하기 전 그와 관련된 게임을 출시한다. 반대로 게임을 배경으로 하는 문화콘텐츠 역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개봉했던 `워크레프트: 전쟁의 서막`은 블리자드의 게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며, `파이널 판타지` 역시 애니메이션 형태로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그와 발 맞춰 게임 광고도 한편의 대작 영화광고 형식으로 제작돼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뿐 아니라 게임을 즐기지 않는 대중들의 마음까지도 흔들고 있다.

또 다른 게임광고 하나. 발매 첫날 북미 수입 1억7000만달러의 진기록을 기록한 `헤일로3(Halo 3)`의 `Believe` 광고다. 이 광고에서는 영화를 방불케 하는 웅장한 실사 장면도,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시네마틱 영상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게임의 한 장면인 정교하고 세밀하게 제작된 디오라마 세트를 묵묵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더욱 더 광고에 몰입하게 만들고 묵직한 인상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음악이다. 쇼팽의 전주곡 제15번 D플랫장조 `빗방울`의 차분한 선율 아래 잔혹한 게임 속 우주전쟁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헤일로3의 음악은 OST로도 발매되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 OST 기록을 갖고 있다.

최근 출시 쇼케이스를 열고 비공개 테스트(Closed Beta Test, CBT) 모집을 시작한 카카오 게임즈의 수집형 RPG `음양사 for kakao`도 앞서 언급한 게임시장 트렌드를 잘 따르고 있는 게임이다. 인간과 요괴가 공존하던 천 년 전 일본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본 원작 소설 `음양사`의 거대한 세계관을 문학적 스토리로 그려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 `화양연화`의 거장 음악감독 우메바야시 시게루가 제작한 게임 속 음악은 기묘하고 신비한 음과 양의 세계를 잘 담아내고 있다. 게임을 넘어선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부분에서 신경을 썼다는 카카오의 말대로, 필자가 광고 제작을 준비하며 `음양사 for kakao`를 접한 첫인상은 음양사가 게임 상품, 제품이면서 동시에 시, 소설, 영화와 같은 예술적 장르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런 취지에서 마치 도슨트(docent·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가 하나의 작품을 차분히 소개하듯 `음양사 for kakao`가 가진 매력을 전달하고자 했다.

거실 TV앞에 앉아 게임을 즐기던 소비자들은 데스크톱, 노트북을 거쳐 이제 손 안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그 시장성을 충분히 검증 받은 게임은 마케팅의 영역을 넘어 문화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담론이 형성되고 있으며,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이미 예술의 한 장르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확실한 것은 게임이 예술의 경지에 올랐고, 따라서 그것을 담아낼 그릇 역시 예술이 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여훈 엘베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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