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디지털 미디어의 시대다. 디지털 시대는 마케팅에 크나큰 혜택을 가져다줬지만,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주화입마`란 기의 운용을 잘못하면 몸에 이상이 생긴다는 뜻이다. 고리짝 시절 유행하던 무협지에서나 읽었을 법하지만,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디지털 시대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브랜드들엔 여전히 유효한 단어다.

디지털 시대가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미디어 비용의 효율성이다. 이제 브랜드는 마케팅 비용을 많이 투자하지 않고도 광고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비용 문제 때문에 광고는 엄두를 내지 못하던 브랜드들도 이제는 적은 비용으로도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광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광고 시간 역시 기존의 15초라는 틀을 벗어나게 됐으며, 광고는 이전과 달리 브랜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담을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우리는 주변에서 다양한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형태의 광고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을 만큼 많은 양이다. 자연히 광고 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브랜드들은 더 많은 조회 수와 `좋아요`를 얻어야 하며, 광고의 홍수 속에서 스킵(skip)되지 않아야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광고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메시지를 전달하랴, 조회 수를 신경 쓰랴 골머리가 아프다. 브랜드들은 이 속에서 살아남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공감`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공감은 재미와 임팩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유효한 무기다. 브랜드들은 타깃으로 설정한 이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스토리 중심의 광고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15초라는 틀에서 벗어나 30초 이상의 광고를 끝까지 시청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지다 보니 정작 광고의 목표인 브랜드가 전하려는 메시지나 무슨 브랜드의 광고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게 됐다. 쉽게 말해 공감되고 재미도 있지만 도대체 무슨 광고였는지, 어떤 브랜드의 광고였는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알기 어려운 광고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브랜드는 이제 수많은 광고의 노이즈 속에서 살아남아 시청자들로 하여금 끝까지 광고를 보게 하면서도, 나아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존재감을 소비자 머릿속에 남겨야 하는 숙제를 끌어안게 됐다.

스포츠웨어 브랜드 `데상트`의 사례는 이 두마리 토끼를 어떻게 잘 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활강`이라는 뜻의 브랜드 네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데상트의 브랜드 기원은 스키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데상트는 스키가 추구하는 프리미엄 이미지와 안정적 기능이라는 브랜드의 본질을 다른 종목의 스포츠 웨어들에도 적용하고 있다. 경량화와 쿠셔닝이 대세였던 러닝화 시장에서는 오히려 `안정성`이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마케팅을 전개했다.

광고회사는 당시 이러한 제품의 특성을 소비자에게 임팩트 있게 전달하기 위해 `Running Gear, 러너를 위한 장비`라는 슬로건을 제안했다. 데상트의 러닝화는 단순히 달리기 위한 슈즈가 아니라 스키 장비와 같이 러닝할 때 안정성을 보장하는 신발임을 알리고자 한 슬로건이었다.

데상트는 이러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나이키, 아디다스, 언더아머와 같은 대형 글로벌 브랜드들이 잠식하고 있는 척박한 국내 스포츠웨어 시장에서 후발 주자임에도 러닝화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특히 브랜드 존재감을 소비자의 머릿속에 찰싹 달라붙게 해준 브랜드 슬로건이 성공적인 연착륙의 한 축을 담당했다.

국내 가구 브랜드 한샘 역시 강력한 브랜드 슬로건을 활용해 승부를 건 사례다. 가구 공룡 이케아가 한국 시장에 들어온 이후 침체돼 있던 국내 가구 브랜드들이 생존을 위한 치열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지금, 한샘 역시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또 한번의 성장을 시도했다. `주방가구의 대명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대한민국 가구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철옹성 같은 침대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침대 시장의 전통적 강자 시몬스, 에이스의 아성을 넘어야 했고 그들을 넘어설 수 있는 차별화된 제품 콘셉트와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다.

한샘이 주목한 것은 `나에게 맞춘 침대`였다. 사람마다 생활 및 수면 패턴, 체형, 가족 구성이 다른 만큼 소비자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 침대`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제품 콘셉트를 기반으로 `침대 맞춤법`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이 탄생했다. 기존의 침대 브랜드와 차별화되면서도 소비자 뇌리에 브랜드 이미지를 쉽게 각인시킬 수 있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오랜 사랑을 받아온 브랜드들은 모두 `딱!` 하고 떠오르는 브랜드 슬로건이 있다. 흔히 나이키는 `Just do it`, 아디다스는 ` Impossible is nothing`, 애플은 `It`s different`, 에이스침대는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를 떠올린다.

물론 좋은 슬로건이 있다고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품 차별화와 품질의 우수성은 당연히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 특히 모바일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괜찮은 브랜드들은 너무 많아졌고 소비자들은 그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제품을 고르게 됐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그 브랜드는 이런 제품이었지!` 하고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의 이름표`, 즉 슬로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됐다.

디지털 시대, 광고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 뇌리에 각인된 단순하고 명쾌한 브랜드의 슬로건이야말로 바로 좋은 제품을 위한 좋은 광고의 필수 조건이자 브랜드가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다.

[김동욱 이노션 CM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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