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대표하는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기 전까지 꽤나 울적한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쓴 장편 서사시가 소위 `대박`이 나면서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크나큰 명예와 인기를 얻었는데, 그때 남긴 한 줄의 소감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는 이후 벼락스타들의 전매특허 대사가 되었다.

두어 달 전 영국 BBC방송은 평범한 한 가족을 하룻밤 만에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방송 사상 역대급으로 `귀여운 방송사고`라는 평을 받았던 한 인터뷰 때문인데,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로버트 켈리 교수가 BBC와 생방송 인터뷰를 하는 도중 어린 자녀들이 갑자기 나타나 인터뷰를 방해하는 장면이 보도된 것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묵직한 뉴스를 전하던 중 대학 연구실처럼 보이는 서재 문을 열고 아주 귀여운 아이와 보행기를 탄 아기, 그리고 재빠른 엄마가 차례대로 입장하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는 켈리 교수 모습은 전성기 때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처럼 반전과 유머러스함이 넘쳤다. 게다가 실제 뉴스의 한 토막이니 짧으면서도 리얼했고 강렬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BBC가 유튜브에 업로드하자마자 영상은 공유의 공유를 거쳐 켈리 가족 신드롬을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스포츠 채널에서 벼락스타가 된 한국인도 있다. "골프와 볼링을 함께한다면?"이라는 제목으로 ESPN 포털 `오늘의 장면(Must See Video)`에 소개된 영상 속에는 드라이버샷으로 볼링 스트라이크에 도전하는 한 여성의 모습이 담겼다. 첫 번째 시도에서 스트라이크에 성공한 이 여성은 두 번째 시도에서 아깝게 볼링핀 한 개를 남겨두고 모두 쓰러뜨린다. 남은 볼링핀 하나마저 깔끔한 샷으로 스페어 처리를 하며 박수받는 이 여성은 프로골퍼 김민주 선수다.

휠라골프에서 후원하는 유망주 선수 9명으로 구성된 `임팩트 9` 팀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트릭샷 영상이 뜻밖에 해외 골프 커뮤니티에서 `합성이냐? 아니면 진짜냐?`는 논쟁이 벌어지면서 화제가 돼 ESPN·CBS스포츠 같은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영상 조회 수는 해외에서 1000만뷰를 훌쩍 넘었다. 매일 수천 개 동영상이 쏟아지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의외성과 놀라움을 주는 콘텐츠의 매력은 이렇게 국경을 넘나든다. 그동안 우리는 감동과 재미를 주는 콘텐츠 공식은 `기승전결`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시공간의 제약이 적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기존의 질서나 격식,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놀라움과 자유분방함을 주는 스토리가 시청자와 소비자들에게 더 강렬하게 각인된다. 이것이 진지한 인터뷰 중에 춤을 추며 입장하는 어린이, 광활한 필드가 아닌 실내 볼링장에서 멋진 드라이버샷을 날리는 여성에게 네티즌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최근 `소셜미디어 라이브 방송`이 인기를 끌며 디지털 캠페인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유 역시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동안 전문 장비와 인력을 갖춘 방송사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 소셜 플랫폼의 확장과 함께 어디에서든 가능해졌다. 특히 이번 19대 대선 선거 캠페인에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유세 현장과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유권자와 소통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있는 그대로 현장 상황을 전달하다 보니 앞서 소개한 BBC 인터뷰 같은 돌발상황도, 뜻밖의 감동적인 상황도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며칠 전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을 중퇴한 천재들의 졸업 축사 중에는 저커버그보다 더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연설이 있다. 과연 저커버그가 어떤 메시지를 담은 연설을 할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저커버그는 그들의 선배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졸업식 축사 전날, 그는 13년 전 학생일 때 머물렀던 기숙사 방을 아내 프리실라 챈과 함께 찾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셜미디어 개발자답게 휴대폰 카메라와 페이스북 라이브를 켠 뒤 실시간 중계로 기숙사 곳곳과 페이스북 창업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고, 즉석에서 준비된 대본 없이 기숙사 후배들과 대화했다. 이제는 관광 명소가 돼버린 실리콘밸리의 최신식 페이스북 본사 사무실을 두고, 허름한 기숙사 한편에서 시청자 700만명에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기업, 브랜드 그리고 유명인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기 위해 소셜미디어로 소통한다. `기승전결`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면서 어떤 콘텐츠가 성공할지 예측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낯설고 의외의 모습이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고 신드롬을 만들어낸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낯선 소통은 이제 하룻밤 만에 세계적 스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강력하고 매력적인 도구가 됐다.

[최모세 대홍기획 디지털캠페인3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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