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광고인은 겁이 난다. 그 두려움을 표현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두려움은 이미 모두에게 당연하다. 원인은 경계가 사라진 크리에이티브 전쟁에 있다. 예전에는 다른 광고회사만 상대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 반대편, 자신의 방 안에서 영상을 찍어 올리는 12세 아이도 상대해야 한다. 어디서 싸워야 할지도 불분명하다. 미디어라고는 생각도 안 했던 공간과 시간에서 경쟁사가 마케팅 활동을 한다. 싸움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경계선이 사라졌다. 누구와 싸워야 할지, 어디서 싸워야 할지 모르니 두렵다. 이 두려움을 이기고 즐겁게 뛰놀 수는 없을까?

지난 3월 말 파타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제 광고제 `2017 애드페스트`에 다녀왔다. 이곳에서 심사위원과 참관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수상작들을 보며 이와 같은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대표적인 캠페인이 유니클로의 `히트텍 윈도우`였다.

유니클로 히트텍은 겨울철 따뜻함을 지켜주는 옷이다. 유니클로의 기능성 내의 브랜드 히트텍 출시 10주년을 기념한 캠페인 `히트텍 윈도우`는 단열 효과가 입증된 에어캡(뽁뽁이)에 히트텍 브랜드 로고를 인쇄해 소비자들이 가정과 사무실 등의 유리창에 부착할 수 있도록 증정하고 유니클로 주요 매장의 창문에도 부착해 높은 브랜드 홍보 효과를 거뒀다.

이 캠페인에서 히트텍은 옷 그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소비자가 자신의 집 창문에 붙인 단열재는 훌륭한 광고물이 된다. 창 안에서도 창밖에서도 광고물이 보인다. 단열재는 그 자체로 따뜻함을 지킨다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뚜렷한 히트텍 로고를 보여준다. 소비자들의 집 창문이 광고 매체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기존의 기준으로 이 히트텍 광고를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 프로모션? 이벤트? 바이럴 영상? 히트텍 캠페인은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새로운 미디어를 창조해냈다. 그래서 이 캠페인은 단지 다이렉트 카테고리뿐만이 아니라 미디어 부문에서 골드를 수상했으며 아웃도어와 프로모션 부문에서도 실버를 수상했다.

크리에이티브에 경계가 없어진 트렌드는 젊은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올해 애드페스트에서 제일기획이 아시아퍼시픽 지역 15개 국가의 젊은 광고인들을 대상으로 `영 로터스(Young Lotus) 워크숍`을 열었다. 이 프로그램은 각국 대표로 선발된 주니어 크리에이터들이 아이디어를 겨루는 일종의 경쟁 프레젠테이션이다. 필자는 워크숍 세미나와 심사에 참여했다. 각국 대표에게는 애드페스트 20주년을 맞아 젊은 크리에이터들을 대상으로 애드페스트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1·2차 경합을 거쳐 수상작으로 선정된 일본팀 크리에이티브의 핵심은 `질투`였다. 수상하지 못한 광고제 참관자들이 수상자들에게 느끼는 질투의 감정을 `젤러시 투어(Jealousy Tour)`라는 굴욕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여행 패키지를 통해 더욱 더 극대화해주자는 캠페인이었다. 극대화된 질투라는 감정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되고 더 나아가 크리에이티브와 광고제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일 것이라는 내용의 유쾌한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는 단순한 디지털 플랫폼을 넘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 뿐만 아니라 PR와 프로모션, 다이렉트(대중 및 소비자의 직접적 행동 유발)까지 모든 경계를 즐겁게 뛰어넘는 장점을 보여줬다. 그 결과 필자를 비롯한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이 캠페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캠페인의 사례를 보자. 삼성전자는 최근 세탁기 신제품 `플렉스워시`를 출시하고 제품의 특장점을 따뜻하고 흐뭇한 가족의 스토리로 풀어낸 광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한 광고는 출장을 간 아내가 그 시간에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남편과 통화하는 내용으로,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남편이 주도적으로 가사를 하는 것이 당연해진 최근의 가족 트렌드를 잘 반영해 호평받고 있다. 이 광고에서 아내와 남편은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제품의 기능에 대해 매우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과거의 기준에서 보면 이렇게 제품을 자세히 설명하는 영상은 제품 소개 영상으로 분류되어, 소위 `TV광고`라고 불리는 영상과는 전혀 다르게 만들어지고 사용됐다. 투입되는 예산과 매체도 전혀 달랐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가 원하기만 하면 제품 정보를 굉장히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즉 광고에서 괜한 허세를 부리기보다는 제품의 뛰어난 특징을 솔직하고 진실되게 전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시대인 것이다.

정보와 광고가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진솔한 제품 소개 영상이나 실제 제품을 사용하며 설명해주는 핸즈온(hands-on) 영상이 유튜브에서 수천만 뷰를 넘기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매력적인 정보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핵심 크리에이티브가 되는 시대다.

어차피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것을 즐겨야 하지 않을까. 그 전쟁을 놀이로 바꿔 불러보자. 경계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해도 된다는 뜻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그대로 두지 말고, 자르고, 섞고 다시 붙여보자. 내 머릿속 경계선부터 허물어보자. 마치 더 넓어진 놀이터에서 더 맘껏 뛰노는 아이들처럼 말이다.

[이경주 제일기획 CD(Creative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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