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일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수많은 명제들을 만나게 된다. `테크놀로지가 곧 크리에이티브`라고 하는 다소 생경한 말에서부터 `광고는 죽었다`는 섬뜩한 말에 이르기까지. 변화된 마케팅 환경에 비추어 곱씹어 보면 모두 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말 하나에 큰 세상이 담겨 있는 훌륭한 명제들이다. 또한 빅데이터(Big Data), 마이크로 타기팅(Micro Targeting), 퍼포먼스 마케팅(Performance Marketing) 등의 용어가 광고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무겁게 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서도 나는 `내 이야기의 힘`, 즉 공감의 절대적인 힘을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의 변화를 놓치지 않되, 변화의 중심에 있는 본질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흔히 대화의 기본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학교나 직장에서 인기가 있는 친구는 내 이야기에 나보다 더 억울해 하고 나보다 더 기뻐해주는 친구다. 광고가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곳은 결국 소비자라는 사실을 돌이켜볼 때 광고는 그러한 친구와 같이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모든 것은 소비자 경험으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그 이후에야 기술 측면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 이것 또한 같은 맥락이리라.

공감은 커뮤니케이션의 바이블이자 사람 속에 내재된 DNA라는 것을, 공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다음 몇 가지 콘텐츠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작년 하반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례다. 일명 `약치기 그림`. 지금은 그림을 넘어서 수많은 제품의 광고로 활용되고 있다.

매일매일이 전쟁터인 우리네 직장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웃픈` 에피소드들. 작가는 그것을 기막히게 포착해낸다. 이를테면 그림 속 직장 상사는 보고서가 개판이라고 부하직원을 훈계하고, 그 앞에서 부하직원은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개처럼 일만 시키니까요`라고 응수한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진료를 받으러 온 여직원이 말한다. `말이 잘 안 나오고, 매사에 의욕도 없고, 혼자 있고 싶어요`라고. 의사가 답한다. `실어증`입니다. 여직원이 되묻는다. `네? 언어 장애요?` 의사가 말한다. `아니요, 일하기 싫어증요….` 이 그림들을 본 직장인들은 열광했다. SNS상에는 공유된 그림들로 넘쳐났다.

특히 이 그림의 주인공들은 어릴 때부터 혹독하게 경쟁에 시달려 온 세대다. 이들은 할 말이 많은 세대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어디서든 위로 받지 못하는 세대가 공감의 이야기를 만났을 때 그 폭발력은 클 수밖에 없다.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출생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 그들은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하고, 넓은 식견을 갖추고, 경험을 쌓는 일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그러한 그들이 일을 대할 때의 키워드는 균형이다. 삶과 일의 균형. 기성 세대에게 있어 직장이 자아 실현과 삶을 유지하기 위한 공간이었다면, 이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직장은 삶과 일의 균형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일이 자신들의 행복한 삶을 위협하는 순간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정관장의 `에브리타임` 광고는 바로 이러한 세대를 대변하는 공감의 이야기로 주목 받았다. 사회 초년의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주고 잠시라도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한 것이다. 이 광고에는 직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진상` 캐릭터들과 그들을 참아내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아랫사람이 다 해놓은 일을 채가는 발암 유발 상사, 금요일 오후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팀장, 아재 개그를 늘어놓는 꼰대 부장…그러나 에피소드에 반전은 없다. 겨우 한다는 것이 티 안 나는 소심한 복수거나 홍삼 한 포를 먹고 힘을 내 버티는 것뿐이다.

만약 주인공이 상사에게 대든다거나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담았다면 광고는 눈길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웬만하면 도망칠 수 없는 직장인의 현실과 이를 대변하는 광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접하고 소소하게 웃으며 잠시나마 `어, 나랑 똑같네` 하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공감이 주는 조용하지만 절대적인 힘이다.

공감의 코드는 일본 광고에서도 많이 보인다. 최근의 도쿄가스 광고는 공감이 센 광고다. 가족의 유대편을 보면 엄마라고 하는 사람은 노크도 할 줄 모르고, 아들 옷도 함부로 입고, 맞춤법이 틀린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음을 그냥 알 만큼 촉이 강하고, 선물을 받으면 아들이 미안해할 정도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광고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딱 우리 엄마야!` 공감하게 만들고는 뒤이어 눈물이 나도록 감정을 크게 흔들어 놓는다. 한국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던 도쿄가스 캠페인은 그 이후 딸이 바라보는 아빠를 이야기한 광고로 캠페인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광고를 만드는 것에는 여전히 정답이 없다. 광고는 시대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기에 새로운 시도를 통해 변화를 담아내고, 크리에이티브한 놀라움을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좋은 광고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과 연결되는 공감의 능력에서 나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감은 최첨단 기술이나 새로운 미디어, 특수 효과, 혹은 화려한 영상이 없이도 광고인들이 맨손으로 한 번 붙어볼 만한 우리의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이예훈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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